최종편집일시 : 2017년 08월 30일
창문을 활짝 열고 대청소를 하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힘차게 청소에 나섰는데 혹시 김씨와 같은 고민에 빠진 적 없는지요. ‘살 빠지면 입겠지, 선물받은 건데’라는 고민 끝에 물건을 못 버리고 쌓아두는 일의 되풀이. 그 물건들이 금세 다시 어질러지는 일 말입니다. 사실 물건 버리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요. 몽당연필 하나에도 펜대를 끼워 쓰고, 새 학기가 되면 달력을 재활용해 교과서 표지로 쓰던 우리 정서에 ‘버린다’는 일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과감히 물건 버리기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화작가 선현경씨는 1년간 매일 물건을 하나씩 버렸습니다. 버린 물건의 그림을 그리고 사연을 담아 책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예담출판사)를 펴냈는데요. 그가 원래 청소나 정리에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요새 무슨 물건들이 튼튼한지 낡지도 터지지도 않는다. 대신 집이 터질 것 같다. 이불장, 옷장이 물건으로 꽉꽉 들어차 문도 제대로 안 닫힌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만 물건은 버려도 거기에 깃든 추억은 붙잡고 싶어 물건의 그림을 그리고 사연을 남긴 거지요. 그렇게 하기를 1년. 선씨는 자신이 주로 어떤 물건을 버리는지 알기 때문에 오래 쓰지 못할 것 같은 물건은 애초에 사지 않게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물건을 버릴 때 기억하기 싫은 감정이나 기분·습관·편견도 슬쩍 끼워넣어 버리는 ‘기술’까지 터득했습니다. 유학 시절 사용했던 낡은 가방을 버리며, 힘들고 외로웠던 그 시절의 기억도 정리하는 식이죠.
이보다 앞서 일본에서는 ‘단샤리(斷捨離)’ 또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라는 이름으로 버리기 열풍이 시작됐습니다. 단샤리는 끊고·버리고·떠난다는 뜻으로,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운동을 뜻합니다. 미니멀리스트 역시 지나치게 많은 물건에 피로를 느껴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지진으로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과 오랜 저성장에 빠진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관련 도서가 불티나게 팔리고 온라인에서 정보 공유도 활발합니다. 특히 일본의 한 온라인서점 판매량 1위를 기록한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의 사례는 물건을 줄이고 간결하게 사는 삶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방에 놓인 물건은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입니다. 옷장에는 여섯벌의 옷과 속옷 서너개가 있을 뿐입니다. 이불도 하나, 수건도 한장으로 모두 해결합니다. 본래 메모지 한장도 쉽게 못 버리던 그는 창문을 가릴 정도로 옷과 책을 쌓아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생활했습니다.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접한 뒤 방 정리를 시작하며 그가 버린 물건은 총 3000여개.
덕분에 그의 공간은 아침마다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쾌적한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확 트인 공간을 청소하는 건 일도 아니어서 매일 아침 걸레질을 하고, 퇴근 후에는 스트레칭을 즐깁니다. 물건들을 닦고 고치는 데 들이는 시간과 그에 대한 부담감,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스트레스는 이제 없습니다. 지저분하던 책상을 들어낸 자리에는 지인들을 초대해 얘기를 나눕니다. 인간관계도 좋아진 거죠. 그는 “물건을 줄이면 줄일수록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생각한다. 남을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됐다”라고 책에 씁니다.
국내에도 버리기 문화가 조금씩 퍼져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비롯해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물건 버리기 연습> <심플라이프> 등의 책이 경쟁하듯 쏟아져 나옵니다. 물건 버리기에 관한 의견과 노하우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 ‘미니멀라이프’는 하루에 회원수가 100명씩 늘어날 정도로 인기를 끕니다. 그들은 매일 버린 물건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사연을 공유하고, 매달 1일에는 1개의 물건, 10일에는 10개를 버리는 식의 게임을 진행하며 불필요한 짐을 덜어냅니다.
물건 가지는 게 죄냐? 물론 그건 아닙니다. 다만 책의 저자들과 버리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버리지 않는 습관에만 익숙했다면, 이제는 버리는 습관과 기술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올봄, 다시 장롱을 열어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놓아주는 건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과거의 물건’ 또는 ‘가지지 못한 물건’에 신경을 쏟는 게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그 소중함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사진제공=예담출판사, 비즈니스북스
김해대 기자 hdae@nongmin.com
